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⑨ 금주(禁酒), 눈을 뽑고 손 발을 자르는 심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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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손이나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마태복음 18장 8절, 개역개정) 이어지는 9절에서는 눈에 대해서도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눈이 죄를 짓게 한다면 차라리 그것을 빼내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몸의 일부를 잃더라도 온전한 삶에 들어가는 것이, 몸은 온전한 채로 그릇된 길에 머무는 것보다 낫다는 뜻입니다. 금주(禁酒)를 이야기하면서 처음부터 이런 극단적인 비유를 꺼내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생뚱맞게 들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술을 끊어내는 일은 정말이지 내 몸의 일부를 잘라내는 것만큼이나 어렵습니다. 금주가 이토록 실행하기 힘든 이유는 분명합니다. 술은 단순한 선호나 습관이 아니라, 몸과 영혼을 사로잡는 강력한 '중독'이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그 중독은 우리의 삶을 통째로 무너뜨릴 만큼 치명적입니다. 중독이 어떻게 인생을 망가뜨리는지 보려면, 마약으로 삶이 파탄 난 사람들을 살펴보면 됩니다. 흔히 "술은 마약과 같은 중독성이 있다"고 말하지만, 저는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술은, 법이 붙인 이름만 다를 뿐, 마약입니다." 서서히 무너지는 삶 애주가들 입장에서는 술을 마약에 비유하는 것에 반문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마약은 인생을 '빠르게' 망가뜨리고, 술은 '천천히' 망가뜨린다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서서히 데워지는 냄비 속에서 위험을 눈치채지 못하는 개구리 냄비 속 물에 개구리를 넣고 온도를 아주 서서히 올리면, 개구리는 위험을 눈치채지 못한 채 서서히 죽어갑니다. 술에 중독된 사람들도 냄비 속 개구리와 같습니다. 술이 자신의 삶과 몸을 천천히 망가트림에도 불구하고, 죽는 그 순간까지 그것이 술 때문이라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 채 죽어가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술은 천천히 몸에 각종 질병을 일으키고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같은 방식으로 천천히 장기간에 걸쳐 나쁜 결과를 만듭니다. 사람들이 나...

② 세상의 중심을 '정신'에서 '몸'으로 돌려놓은 스승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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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몸철학입니다. 오늘은 앞으로 우리가 함께 나눌 사유의 깊이를 더해줄 세 명의 세계적인 몸철학자와 그들의 명저를 소개하려 합니다. 과거의 철학은 정신만을 고결하게 여기고 몸을 그저 껍데기로 취급하곤 했지만, 현대에 이르러 몸이야말로 삶의 주체임을 깨달은 철학자들이 있습니다. 1. 모리스 메를로 퐁티 — 지각의 현상학 "나는 내 몸을 통해 세계를 지각하고 존재한다." 몸철학을 이야기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프랑스의 현상학자입니다. 그는 데카르트의 유명한 명제인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에 정면으로 맞섰습니다. 머리로만 생각하는 정신이 먼저가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느끼고, 만지고, 바라보는 이 '몸'이야말로 모든 존재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그에게 몸은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세상과 대화하는 살아있는 '살(Flesh)'입니다. 내 몸이 아플 때 세상이 다르게 보이고, 내 몸이 건강할 때 세상이 아름답게 다가오는 것처럼, 우리의 삶과 깨달음은 모두 몸을 통과해서만 완성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줍니다. 2. 프리드리히 니체 —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몸은 하나의 커다란 이성이다." 망치를 든 철학자로 유명한 니체 역시 엄청난 몸철학자였습니다. 그는 정신이나 영혼이 몸보다 우월하다는 종교적, 전통적 사상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니체는 도리어 정신을 몸이라는 거대한 체계가 작동하기 위해 사용하는 아주 작은 도구, 즉 '작은 이성'에 불과하다고 보았습니다. 그의 저서 속에는 '몸을 경멸하는 자들에 대하여'라는 유명한 구절이 있습니다. 몸을 죄악시하거나 소홀히 여기는 자들은 삶의 본질을 잃어버린 자들이라며, 내 몸을 지극히 돌보고 그 목소리에 순응하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삶을 사랑하는 길이라고 선언합니다. 3. 리처드 슈스터만 — '몸의 의식' "몸에 대한 자각과 훈련이 더 나은 삶을 만든다....

⑦ 몸을 깨워 정신을 깨우자, 아침 냉수 샤워의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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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 글들을 통해 공장음식을 경계하고 우리 몸에 맑은 생명력을 채워 넣는 식생활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맑은 음식을 먹고 세포를 정화하는 것이 내 몸을 섬기는 기초적인 내실을 다지는 과정이라면, 매일 아침 눈을 떠 하루를 시작하는 순간에는 내 몸의 감각을 강렬하게 깨워내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흔히 사람들은 정신이 몸을 지배한다고 믿는다. 굳은 의지와 맑은 정신이 있으면 어떤 신체적 피로나 한계도 극복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 몸철학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진실은 그 반대에 가깝다. 몸과 정신은 서로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 유기적인 관계이지만, 실제로 몸이 정신에 주는 영향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절대적이고 거대하다. 비유하자면 몸은 끝없이 펼쳐진 거대한 바다와 같고, 정신은 그 바다 위에 위태롭게 떠 있는 한 척의 배와 같다. 바다가 잔잔하고 깊고 푸를 때 그 위의 배가 비로소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듯이, 몸이라는 바다가 혼탁하고 거칠게 흔들리거나 혹은 차갑게 죽어 있다면 그 위에 뜬 정신이라는 배는 결코 온전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없다. 정신을 깨우고 싶다면, 마음을 다잡으려 애쓰기 전에 먼저 내 정신이 딛고 서 있는 대지이자 바다인 '몸'부터 깨워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아침을 여는 몸철학의 백신, 냉수 샤워 그렇다면 매일 아침 잠에 취해 흐릿해진 몸의 바다를 단숨에 깨우고 맑은 정신을 이끌어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무엇일까? 나의 경험을 이야기하면, 그것은 다름 아닌 '냉수 샤워'다. 흐릿한 정신을 단숨에 깨우는 아침 냉수 샤워 흐릿한 정신을 단순에 깨우는 아침 냉수 샤워 아침에 일어나 따뜻한 물로 몸을 녹이는 것은 달콤한 유혹이지만, 그것은 밤새 이어진 수면의 연장선일 뿐 몸을 각성시키지 못한다. 반면 수도꼭지를 차가운 물 쪽으로 끝까지 돌리고 몸을 맡기는 순간, 우리 몸은 경이로운 충격을 받게 된다. 처음 냉수 샤워를 시도할 때는 거창한 각오가 필요 없다. 그저 차가운 물줄...

⑥ 공장음식,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연금술의 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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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 글들을 통해 스트레스 관리와 밤의 수면, 그리고 낮의 멍때림이 어떻게 우리 몸과 마음의 쓰레기를 비워내는지 이야기했다. 비워내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우리 몸에 무엇을 채워 넣느냐 하는 문제다. 오늘 나는 우리가 흔히 '가공식품'이라 부르지만, 내 몸철학의 관점에서는 단호하게 '공장음식'이라 명명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내가 이를 가공식이 아닌 공장음식이라 부르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것은 밭이나 바다에서 온 생명이 아니라, 거대한 기계와 파이프라인이 가득한 공장에서 찍어낸 인공물이기 때문이다. 왜 공장음식은 우리 몸에 위험한가? 공장음식의 가장 큰 비극은 우리가 그 음식을 입에 넣으면서도, 그 안에 도대체 어떤 재료들이 어떤 비율로 들어갔는지 확신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물론 법적으로 공장음식들은 포장지 겉면에 원재료로 쓰인 성분들을 표기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눈으로 본 실제 재료들이 아니라 단지 포장지 겉면에 쓰인 이름들일 뿐이다. 누가 알겠는가? 포장지 겉면에 쓰인 재료들이 유통기한이 지났거나 문제가 되는 상태에서 사용되었는지 말이다. 또한, 공장음식에는 각종 화학 재료들이 사용되는데 이 화학 재료들은 우리 몸 안에서 '상호작용'을 일으킨다. 과학자들은 화학 재료의 유해성 기준을 개별적으로만 말하지만, 수십 가지의 화학 물질이 한데 섞였을 때 우리 몸속에서 어떤 '화학반응'이 일어날지 아무도 알 수가 없다. 마치 실험실의 비커 속에서 일어날 법한 위험한 연금술이 매일 우리의 위와 장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돈을 위해 인간에게 독을 먹인 자본주의의 역사 과거 나는 책을 읽다가 자본주의가 오직 돈을 벌겠다는 탐욕 때문에 인간이 먹어서는 안 될 것들을 공장음식과 음료에 넣고, 심지어 그것을 화려한 광고로 포장해 온 역사적 사건들을 접하고 깊은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기업들은 이윤을 위해서라면 대중의 건강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대표적인 사건이 ...

⑤ 멍때림, 마음의 흙탕물을 가라앉히는 비움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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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 글을 통해 밤이 베푸는 고요한 기적의 시간, 즉 수면과 오토파지를 통해 우리 몸의 세포와 뇌가 어떻게 독소를 치워내고 대청소를 하는지 이야기했다. 수면이 육체와 뇌를 물리적으로 세척하는 정화의 시간이라면, 우리가 깨어 있는 낮 시간 동안에도 이에 못지않게 마음의 쓰레기를 비워내고 정신을 회복시키는 방법이 있다. 온갖 소음과 치열한 경쟁, 그리고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숨이 막히고 지쳐갈 때, 우리 마음은 어떻게 다시 시작할 힘을 얻을 수 있을까? 나는 과거 나의 마음이 질식한 것 같은 순간에 우연히 멍때림을 경험하고 마음이 다시 호흡을 하는 듯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 우연한 멍때림은 마음이 힘들어질 때마다 의식적인 멍때림으로 발전해 갔다. 나에게는 내 마음의 쓰레기를 비워내는 가장 단순하고도 강력한 방법이 바로 '멍때림'이다. 멍때림은 내 머릿속에 엉켜 있는 온갖 생각의 파편들을 내려놓고, 오직 마음을 비우기 위해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비움의 시간이다. 마치 마구 뒤흔들어 놓은 흙탕물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서히 가라앉으면서 마침내 맑은 물이 되듯이, 내 안의 소란스러운 생각들이 스스로 침전되어 맑아질 수 있도록 가만히 시간을 내어주는 것이다. 나만의 멍때림을 찾아서 이 멍때림의 미학을 실천하기에 가장 좋은 곳은 단연 자연의 품이다. 나의 경험을 돌이켜보면, 가슴이 답답할 때마다 찾아갔던 강릉 앞바다에서 파도 소리를 들으며 앉아 있을 때 머릿속이 시원해지고 마음이 가장 평온하게 정돈되곤 했다. 바다 앞에 앉아 멍때림을 시작하면 처음 30분 동안은 여전히 잡념이 맴돌지만, 그 시간이 지나갈 무렵에는 신기하게도 내면 깊은 곳에서 평화가 차오르고 거친 파도 소리가 마치 내 몸의 들숨... 날숨처럼 자연스러운 리듬으로 들리기 시작한다. 이러한 비움의 순간은 비단 바다 앞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나는 일상 속에서 나만의 멍때림을 유도하는 다양한 환경을 발견하고, 그것들에 다정한 이름을 붙여주며 자주 멍을 때리곤 한다. 구...

④ 수면과 오토파지, 세포의 대청소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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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 글을 통해 우리 몸의 건강을 지키는 첫 번째 관문으로 스트레스와 편도체 관리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마음을 다스리고 신경계를 안정시키는 것이 깨어 있는 시간 동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어라면, 그다음 단계는 밤의 치유로 이어져야 한다. 내가 건강에 있어서 '수면'을 스트레스 관리에 이어 두 번째로 중요하다고 확신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수면은 단순히 낮 동안 지친 몸을 뉘어 쉬게 하는 소극적인 휴식이 아니라, 세포가 스스로를 재생하고 온 몸의 쓰레기를 치워내는 '고요한 기적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잠을 자는 동안 온몸의 기능이 멈춘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몸의 세포들은 우리가 잠든 사이에 오히려 가장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깨어 있는 동안에는 음식을 소화시키고, 움직이고, 생각하느라 미처 하지 못했던 대대적인 '세포 수준의 대청소'가 바로 잠든 사이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 청소의 핵심 메커니즘이 바로 '오토파지(Autophagy, 자가포식)'와 뇌를 청소하는 '글림파틱 시스템'이다. 밤이 되면 문을 여는 세포 재활용 공장, 오토파지 오토파지는 한 문장으로 말해 세포 내의 쓰레기 재활용 시스템이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수십조 개의 세포 안에서는 매일 끊임없이 활동이 일어나고, 그 과정에서 기능이 떨어진 미토콘드리아나 변성된 단백질 같은 세포 내 노폐물이 쌓이게 된다. 오토파지는 세포가 이 쓰레기들을 스스로 주머니에 가두어 분해한 뒤, 우리 몸에 다시 필요한 깨끗한 에너지원으로 재활용하는 경이로운 생명 현상이다. 이 놀라운 메커니즘을 규명한 학자가 2016년 노벨생리학상을 받았을 정도로, 오토파지는 현대 의학이 발견한 가장 위대한 치유의 열쇠 중 하나다. 중요한 것은 이 오토파지가 아무 때나 활성화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세포들은 몸에 끊임없이 영양분이 공급될 때는 청소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다 외부로부터의 영양 공급이 중단되고 몸이 공복 상태에 들어...

③ 스트레스와 편도체는 왜 만병의 근원이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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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다"라는 말을 주변에서 흔히 듣는다. 직장 상사의 잔소리, 불안한 미래, 꽉 막힌 도로 위의 정체, 심지어 스마트폰으로 밀려드는 수많은 알림까지. 현대인들은 눈을 뜨고 감을 때까지 스트레스의 홍수 속에서 살아간다. 그런데 문득 이런 의문이 들지 않는가? "우리 몸은 왜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토록 쉽게 무너지고 질병에 걸리도록 설계되었을까?“ 그 비밀을 풀기 위해서는 우리 뇌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작은 아몬드 모양의 구조물, 바로 '편도체(Amygdala)'와 인류의 진화 역사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과거에는 인류를 살리는 최고의 무기였지만, 현대에는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도구로 변해버린 편도체의 역설, 그리고 이 편도체를 길들여 각종 만성 질환으로부터 내 몸을 지키는 과학적인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1. 맹수로부터 조상들을 구원한 '초고속 경보 시스템’ 인류의 조상들이 수렵과 채집을 하며 살아가던 원시 시대를 상상해 본다. 수풀 사이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때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생각을 담당하는 대뇌피질이 작동해 "저 소리는 사자일까, 아니면 단순한 바람일까? 사자라면 몸집은 얼마나 클까?"라고 분석을 시작한다면 어떻게 될까? 분석이 끝나기도 전에 맹수의 공격을 받아 목숨을 잃고 말았을 것이다. 이때 인류를 구원한 것이 바로 편도체다. 편도체는 감각 정보가 이성에 도달하기도 전에 위험을 감지하고 온몸에 비상 경보를 울리는 '초고속 생존 통제실'이다. 편도체가 위험을 감지하는 순간, 뇌는 즉각적으로 '투쟁-도피 반응(Fight-or-Flight)'을 유도한다.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과 아드레날린이 폭발적으로 분비되고, 심장은 터질 듯이 뛰며, 혈압이 솟구친다. 당장 도망치거나 싸워야 하므로, 소화기관이나 면역계로 가야 할 혈액과 에너지를 모두 다리와 팔의 근육으로 몰아주는 것이다. 더불어 편도체는 이 끔찍한 공포의...

② 내 몸을 경외감으로 바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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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며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고 배웠고 그렇게 믿어 왔다. 육체는 정신의 통제에 따르는 도구와 같은 것이라고 배웠고 그렇게 믿어 왔다. 그러나 몸철학은 한낱 도구와 같은 육체를 경외감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1. 경외감(敬畏感)이란 무엇인가 '경외감(敬畏感)'은 한자의 뜻 그대로 공경할 경( 敬)과 두려워할 외(畏)가 합쳐진 감정이다. 즉, 어떤 대상의 위대함이나 신비로움에 압도되어 가슴 깊이 공경하고 존경하면서도, 동시에 그 거대함 앞에 자연스럽게 두려움이나 엄숙함을 느끼는 복합적인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단순히 무서워서 느끼는 공포와는 전혀 다른, 영혼의 떨림에 가까운 감정이다. 예를 들자면 부모가 갓 태어난 아이를 처음 마주 볼 때나,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과 그 너머에 펼쳐진 광활한 우주를 생각할 때, 혹은 압도적인 크기의 태풍이 몰아치는 바다에서 조각배를 탄 사람이 느끼는 감정과 같은 것이다. 나는 태어나서 몇 번이나 내 몸에 대해 경외감을 느껴 본 적이 있는가? 2. 간병의 고통 속에서 깨달은 몸의 절대성 나는 그런 감정을 성빈센트에서 각종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리고 암과 싸우며 고열과 혈뇨로 고통받는 누이를 보면서 조금이나마 느끼기 시작하였다. 죽어가는 사람들 앞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고통받는 사람들 앞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들에게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라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무책임한 말인가? 그들에게 종교를 가지라고, 하나님을 믿거나 부처를 믿으라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절망적인 말인가? 처음 누이를 간병하기 시작한 얼마 동안은 나도 무책임하고 누이에게 절망적으로 들릴 수 있는 그런 말을 조금 했던 것 같다. 그러나 곧 깨닫게 되었다. 고통 속에 몸부림치는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이 별로 없다는 것을. 그저 곁에 있어 주고, 그저 원하는 일을 거들어 주거나 대신해 줄 뿐이었다. 그들에게 생각을 바꾸고 희망을 가지라고 도저히 이야기할 수 없었다. 가족의 고통은 얼마 정도는 나의 고통...

① 600만년 진화가 우리 몸에 새긴 비밀: 왜 채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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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70년 생으로 태어나서 2025년 10월까지 왜 채식을 위주로 식사를 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했다. 학교에서도 주변 사람들에게서도 왜 채식이 중요한지 배우거나 듣지 못했다. 대신 어머님께서는 어려운 가정 형편에서도 자식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정성껏 만들어 주시는 분이셨고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육류 음식을 더 귀하게 자식들 앞에 내놓으셨기에 우리들은 육류 음식은 더 비싸고 귀한 음식이라는 인식을 자연스럽게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55년을 산 것이다. 내 나이가 만 45세가 넘어가면서 몸이 무겁고 피곤하게 느껴지기 시작했고 결국 당뇨병 판정을 받고 그때부터 당뇨약과 고혈압 약을 먹게 되었다. 키 171cm에 몸무게는 71kg에서 72kg 사이를 유지하며 아무리 노력해도 65kg 정도로 빠지지 않았다. 몸이 좀 가벼웠으면 하는 바램을 늘 가졌지만 몸무게는 빠지지 않고 오히려 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무언가 바꾸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무엇부터 바꾸어야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는지 모르고 오히려 나 정도면 다른 사람들에 비해 건강이 양호한 편이라는 안이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나에게 결국 큰 변화가 닥쳐온 것이다. 가족의 아픔과 삶의 큰 변화가 찾아온 날 나는 2025년 9월 15일을 잊지 못한다. 그날은 횡성에 살고 있는 누이를 내 차에 태우고 수원에 있는 성빈센트 병원에 가기로 약속한 날이었다. 당시 회사가 서울에서 경상북도 경산시로 이전해서 나도 경산에서 회사를 다니고 있었기에 회사에 하루 휴가를 내고 횡성에서 누이를 모시고 수원에 있는 병원에 가게 된 것이다. 누이는 나이 18세에 루프스 판정을 받고 신장 기능이 약화 되어 여동생의 신장을 이식 받았으나 뜻하지 않게 암이 발생하였고, 암이 발생한 신장과 방광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고 이식 받은 신장에는 오줌주머니를 차고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 누이가 얼마전부터 혈뇨가 보이고 몸이 피곤하여 병원에 가게 된 것이다. 당시 팔순이 넘은 아버지가 파킨슨 병 진단을 받고 어머니의 간호를 받고 있는 상황이었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