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 멍때림, 마음의 흙탕물을 가라앉히는 비움의 시간
나는 지난 글을 통해 밤이 베푸는 고요한 기적의 시간, 즉 수면과 오토파지를 통해 우리 몸의 세포와 뇌가 어떻게 독소를 치워내고 대청소를 하는지 이야기했다. 수면이 육체와 뇌를 물리적으로 세척하는 정화의 시간이라면, 우리가 깨어 있는 낮 시간 동안에도 이에 못지않게 마음의 쓰레기를 비워내고 정신을 회복시키는 방법이 있다.
온갖 소음과 치열한 경쟁, 그리고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숨이 막히고 지쳐갈 때, 우리 마음은 어떻게 다시 시작할 힘을 얻을 수 있을까?
나는 과거 나의 마음이 질식한 것 같은 순간에 우연히 멍때림을 경험하고 마음이 다시 호흡을 하는 듯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 우연한 멍때림은 마음이 힘들어질 때마다 의식적인 멍때림으로 발전해 갔다. 나에게는 내 마음의 쓰레기를 비워내는 가장 단순하고도 강력한 방법이 바로 '멍때림'이다.
멍때림은 내 머릿속에 엉켜 있는 온갖 생각의 파편들을 내려놓고, 오직 마음을 비우기 위해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비움의 시간이다. 마치 마구 뒤흔들어 놓은 흙탕물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서히 가라앉으면서 마침내 맑은 물이 되듯이, 내 안의 소란스러운 생각들이 스스로 침전되어 맑아질 수 있도록 가만히 시간을 내어주는 것이다.
나만의 멍때림을 찾아서
이 멍때림의 미학을 실천하기에 가장 좋은 곳은 단연 자연의 품이다. 나의 경험을 돌이켜보면, 가슴이 답답할 때마다 찾아갔던 강릉 앞바다에서 파도 소리를 들으며 앉아 있을 때 머릿속이 시원해지고 마음이 가장 평온하게 정돈되곤 했다.
바다 앞에 앉아 멍때림을 시작하면 처음 30분 동안은 여전히 잡념이 맴돌지만, 그 시간이 지나갈 무렵에는 신기하게도 내면 깊은 곳에서 평화가 차오르고 거친 파도 소리가 마치 내 몸의 들숨... 날숨처럼 자연스러운 리듬으로 들리기 시작한다.
이러한 비움의 순간은 비단 바다 앞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나는 일상 속에서 나만의 멍때림을 유도하는 다양한 환경을 발견하고, 그것들에 다정한 이름을 붙여주며 자주 멍을 때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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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름멍 : 이런 구름을 보면 잠시 앉아 멍때려 보자 |
바람이 큰 나무를 스치며 잎사귀들이 사각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바람멍', 푸른 하늘에 흰 구름이 둥실 떠다니는 모양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구름멍', 창밖에 굵은 빗방울이 부딪히며 내는 일정한 소리에 마음을 얹는 '빗소리멍', 그리고 타오르는 장작불을 응시하는 '불멍'까지. 세상에는 마음을 비우는 수많은 종류의 멍때림이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나에게 맞는 최적의 멍때림 조건을 찾는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아무런 자극이 없는 하얀 벽을 마주 보고 하는 멍때림은 오히려 잡생각이 꼬리를 물어 효과가 없었다. 반면, 내 눈앞에서 무언가 끊임없이 움직이되, 그 움직임이 결코 복잡하거나 위협적이지 않고, 자연스러우며 일정한 리듬과 규칙성을 가지고 있을 때 가장 완벽한 멍때림을 경험했다.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툭툭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자연이 만들어내는 무해하고 반복적인 리듬에 정신을 맡길 때, 뇌는 비로소 긴장을 풀고 완벽한 휴식 상태로 들어간다.
멍때림이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렇게 나에게 맞는 자연의 리듬에 기대어 멍때림을 지속하다 보면, 머릿속을 뿌옇게 흐리던 생각의 흙탕물이 가라앉고 마음이 가벼워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나의 경우에 이렇게 마음을 비우면 우선 평화와 안정감이 찾아오고 마음이 긍정적으로 변하며 무슨 일이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상태가 되곤 하였다. 그저 멍때림으로 지친 마음을 다시 살리는 정도만 되어도, 온전히 비워낸 한 시간은 충분히 가치가 있을 것이다.
멍때림을 통해 마음을 되살리면 몸도 되살아나고 다시 살아보고자 하는 활력도 생겨난다. 몸철학은 몸이 마음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그 시작이 '몸'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멍때림을 통해 마음뿐만 아니라 몸도 되살아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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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철학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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