⑩ 30번씩 씹어라?

"오래 씹어라", "30번씩 씹어라" 이런 소리를 사람들은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건강을 위하여 아주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소리이고 심지어 자신은 실천하지 못하면서 남에게는 쉽게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말에 대해 왜 그래야 하는지, 오래 씹으면 무엇이 좋은지 구체적으로 아는 사람은 드문 것 같다.

나의 경우, 십여 년 전에 나보다 10여 살 나이가 더 든 직장 상사가 실제 그 효과를 보여준 적이 있다.
그 분은 나와 사적인 이야기도 나누던 분이었는데 그 날은 삼 개월 만에 다시 만나는 자리였다.
술도 많이 드시던 분이고 체구도 나보다 작고 흰 머리도 많으신 분이어서 평상시 건강과는 별로 관계가 없는 분인 줄 알았는데 그날은 얼굴에 광채가 나는 것 같아 내가 가볍게 물었던 것이다.

"무슨 좋은 일이 있으세요? 얼굴이 광채가 다 나는 것 같아요."

나의 가벼운 질문에 그분은 정색을 하며 나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밥을 먹을 때, 한 30번씩 씹어 먹기 시작한지, 3개월 정도 지났어. 그런데 소화가 잘 되어 몸이 너무 가볍고 혈색도 좋아졌지. 특별히 음식을 가려 먹은 것도 아니고 그냥 평상시대로 먹었는데, 달라진 것은 한 30번씩 씹어 먹기 시작했다는 거야."

그분은 그날 나에게 오래 씹어 먹기 시작하고 자신이 경험한 내용을 광채가 나는 얼굴로 설명해 주었다. 그래서 그날 이후로 나도 오래 씹어 먹어야겠구나 생각을 하였지만 그게 그렇게 쉽지 않았다.

아무튼 퇴직 후 좀 더 건강에 관심을 가지고 하나씩 습관을 고쳐나가고 있는 지금, 왜 30번씩 씹어야 하는지 좀 더 과학적으로 알아보았다. 

'30번'이라는 숫자는 어디서 왔을까

먼저 솔직히 말하면, "30번이 정답"이라고 못박은 단일 연구는 찾지 못했다. 학계에서도 "몇 번을 씹어야 한다"는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고 본다. 다만 일본의 독성학자 니시오카 하지메 교수가 쓴 『씹을수록 건강해진다』 같은 책을 통해 "꼭꼭 씹기"가 대중적으로 퍼지면서, 30이라는 숫자가 하나의 실천 목표처럼 자리잡은 것으로 보인다.

역사를 보면 씹기를 유난히 강조한 사람들이 있었다. 일본의 무장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식사 때마다 48번씩 씹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오래 씹는 습관 덕분인지 그는 당시로서는 드물게 일흔이 넘도록 장수했다고 한다. 검증된 과학적 근거라기보다는 흥미로운 일화 정도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다.

결국 "30"이라는 숫자 자체보다 중요한 건 "식사 시간을 충분히 늘려서 몸이 신호를 보낼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다. 그 신호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오래 씹으면 내 몸에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다섯 가지로 정리해본다.

오래 씹으면 내 몸에 일어나는 다섯 가지 변화

첫째, 포만감 호르몬이 제때 도착한다

배부르다는 신호를 보내는 호르몬(렙틴, GLP-1, PYY 등)은 식사를 시작하고 최소 15~20분은 지나야 제대로 분비된다. 이 호르몬이 분배되어야 포만감이라는 행복감을 느끼며 저절로 먹는 양을 줄이며 숟가락을 놓을 수 있게 된다. 오래 씹어 먹으면서 시간이 20분쯤 지나면 먹은 양이 조금 적더라도 포만감을 느끼며 식사를 즐길 수 있다는 말이다. 포만감을 느끼며 만족스럽고 행복하게 식사를 즐기면서도, 비만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으려면 최소 30분 정도 오래 씹으며 식사를 하자.

둘째, 소화와 영양 흡수가 실제로 더 잘 된다

침 속 아밀라아제라는 효소는 입 안에서부터 탄수화물 분해를 시작한다. 음식을 잘게 부술수록 위장에서 소화효소가 닿는 표면적도 넓어진다. 아몬드를 씹은 횟수에 따라 몸에 흡수되는 지방량이 달라졌다는 실험도 있다. 덜 씹으면 세포벽이 안 깨진 채로 그냥 몸을 통과해버려서 영양소를 흡수하지 못하고 버려지는 것이다(Cassady 외, American Journal of Clinical Nutrition, 2009). 예전에 600만년 진화가 우리 몸에 새긴 비밀: 왜 채식인가?라는 글에서 "먹고 1시간 안에 편하게 소화되면 나에게 좋은 음식"이라는 나만의 기준을 소개한 적이 있는데, 오래 씹는 습관은 이 기준을 통과시켜주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기도 하다.

셋째, 인슐린이 제때 반응한다

밥을 먹으면 탄수화물이 소화되어 포도당으로 혈액에 흡수되고, 혈당이 오른다.
이때 췌장이 인슐린을 내보내는데, 인슐린은 근육세포와 지방세포의 문을 열어 혈액 속 포도당을 세포 안으로 들여보내는 열쇠 같은 역할을 한다. 포도당이 세포 안으로 들어가야 혈당이 다시 정상 범위로 내려온다. 인슐린이 늦게, 적게 나오면 포도당이 혈액 속에 오래 머물게 되고, 이 상태가 반복되면 혈관이 서서히 손상된다.
당뇨 위험군 33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천천히 먹은 사람들이 식후 45~60분 시점에 인슐린 반응이 유의하게 더 높게 나타났다. 한마디로, 오래 씹을수록 인슐린이 더 많이 나온다는 말이고 당뇨 예방에 좋다는 말이다.

넷째, 씹는 행위 자체가 뇌를 자극한다

씹을 때 턱관절과 근육이 움직이면서 뇌로 가는 혈류가 늘어난다는 연구들이 있다. 치아 개수가 적거나 씹는 힘이 약한 노년층에서 치매 위험이 더 높다는 역학 연구들도 꾸준히 나온다. 이것은 좀 더 연구가 진행되어야 확실한 결론이 날 것이다. 그러나 오래 씹으면 뇌를 자극한다는 말은 설득력이 있다.

다섯째, 입 안이 건강해진다

오래 씹을수록 침이 많이 나온다. 침은 입 안의 산성도를 낮추고 음식 찌꺼기와 세균을 씻어내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충분히 씹는 습관은 충치나 치주질환을 예방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이 부분은 치과 쪽에서도 비교적 이견 없이 받아들여지는 사실이다.

글을 마치며

정리하고 보니, 서른 번이라는 숫자에 너무 얽매일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중요한 건 숟가락을 내려놓고, 입 안의 음식이 다 넘어갈 때까지 맛을 음미하며 천천히 오래 씹는 습관인 것 같다. 아마도 아침에 일어나 냉수 샤워를 하는 것처럼 내 몸을 위해 가장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습관이 '식사 시간 최소 30분 그리고 천천히 오래 씹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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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철학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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