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 내가 운명과 팔자타령을 믿지 않는 이유

사람들에게 정해진 운명이라는 것이 있을까?
아무리 노력을 해도 빠져나갈 수 없는 그런 운명이 정말 있을까?
나는 그런 운명은 없다고 단호히 말하는 사람이다.
그런 운명이 없는지 어떻게 아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아마도 하루 정도의 온전한 시간은 필요한 주제일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없어 길게 설명할 수 없는 상대가 내게 그런 질문을 던진다면, 나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그런 운명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설령 존재한다 해도, 나는 그런 운명이 없다고 믿고 오늘 하루를 살고 싶습니다. 단 하루를 살아도 노예처럼 살고 싶지는 않기에, 내 운명의 주인으로 살고 싶기에, 비록 죽은 후에 지옥에 떨어지는 한이 있어도 오늘 하루를 제 마음껏 살겠습니다."

아마도 이런 답을 들으면 몇몇 분들은 더 이상 나와 대화하기를 주저할지도 모른다.
나 역시 그들의 마음을 잘 알지만, 그렇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내가 정해진 운명과 팔자를 믿지 않는 이유

나는 주어진 운명을 믿지 않는다.
나의 운명은 매일 변화하는 환경에 내 몸으로 부딪치며 행하는 대응과 노력에 따라 변할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매일 환경에 대응하는 나의 노력에 따라 나 자신이 바뀌어 간다는 사실이다.
비록 환경을 바꾸거나 조직을 바꾸거나 내 이웃을 바꾸는 것에는 성공하지 못할지라도, 매일 매일의 구체적인 노력은 나 자신을 바꾸어 놓을 것이다.
아주 조금씩일지라도 매일 나를 바꾸어 나가는 그 노력이, 나는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것이라 믿는다.

옛날 고향에서 어렵게 사시던 어른들은 자식들이 보는 앞에서 "팔자타령"을 자주 하곤 하셨다.

"내 팔자에 무슨 호강을 하겠냐"
"내 팔자에 무슨 좋은 일이 있겠냐"

가장 나쁜 것은 자신의 자식들에게도 동일한 방식으로 말을 던지는 것이다.

"네 팔자도 참 기구하구나!"

최악의 저주, 자식에게 하는 팔자타령

이런 식의 말은 자식에게 모진 욕을 하는 것보다 더 나쁜 영향을 미친다.
자식을 위로하는 뜻일지 몰라도, 이 말은 자식의 머릿속에 '나의 노력으로는 결코 깨부술 수 없는 운명의 벽'을 단단히 세워버리기 때문이다.

자식에게 하는 팔자타령은 코끼리의 쇠사슬과 같다
자식에게 하는 팔자타령은 코끼리의 쇠사슬과 같다

마치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 코끼리를 1m짜리 쇠사슬에 묶어놓는 것과 같다. 어른이 된 코끼리는 마음만 먹으면 자신을 묶은 쇠막대기를 쉽게 뽑아낼 힘이 있지만, "내 세상은 오직 이 1m 안뿐이야"라고 믿어버려 평생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자식들에게는 절대 운명이나 팔자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자식들의 발목에 보이지 않는 1m의 쇠사슬을 채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자식들에게는 "실패해도 괜찮다", "못 해도 괜찮다", "가난해도 괜찮다"라는 말을 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다시 몸에 힘이 생겼을 때, 스스로 그 쇠막대기를 힘차게 뽑아낼 수 있다.

죽은 뒤의 천년보다 더 귀중한 오늘 하루

하루하루 인생을 두려움과 걱정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노예의 삶이다.

비록 죽은 후에 지옥에 간다 해도, 혹은 죽은 후에야 실제로 운명이라는 것이 존재했음을 알게 되더라도, 나는 오늘 이 귀중한 하루를 감사하고, 감동하고, 무언가를 깨닫고 사랑하며 살 것이다. 나 자신을 속이지 않고 도전하며, 어려운 이웃에게 도움이 되고, 무엇보다 옳다고 믿는 바를 몸으로 행하며 살고 싶다.

나에게는 오늘 이 하루가 죽은 뒤의 천년보다 더 귀중하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오늘 이 하루가 세상 그 어떤 거창한 진리보다 더 귀중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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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철학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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