⑧ 아무거나 골고루 먹어야 한다? 누구를 위해서?

스위스의 사회학자이자 UN 인권위원회 식량특별조사관으로 일했던 장 지글러는 그의 책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에서 믿기 힘든 사실들을 고발합니다.

그의 책에 따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10세 미만 아동이 5초에 한 명꼴로 굶어 죽어가는 곳이라고 합니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장 지글러 지음

그가 책을 집필할 당시 UN 식량농업기구(FAO)의 발표에 따르면, 지구가 생산하는 농업 생산량은 이미 전 세계 인구의 두 배인 120억 명을 충분히 먹여 살릴 수 있는 양이었습니다. 결국 양식이 부족해서 사람이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120억 명을 먹일 식량이 있는데, 왜 5초마다 아이들이 죽어가는가

그렇다면 이 비인간적인 기아와 죽음은 왜 계속되고 있을까요?

이 책은 그 주범이 자본주의 경제의 잔인한 폭력성과 기만성이라고 말합니다.

1970년 칠레의 아옌덴 대통령이 아이들에게 하루 0.5리터의 분유를 무상 공급하려 했을 때, 분유 시장을 독점하던 다국적 기업 네슬레는 미국 CIA와 공모해 정권을 전복시켰습니다. 쿠데타 이후 아이들을 위한 무상 분유 공급을 비롯한 사회 개혁 정책은 즉시 중단되었고, 가난한 아이들은 다시 극심한 영양실조와 굶주림 속으로 내몰렸습니다.

또한 세계 곡물 시장을 독점한 거대 투기 자본은 곡물 가격을 높게 유지하기 위해 수십만 톤의 식량을 썩혀서 버리고, 배고픈 아이들의 입으로 들어가야 할 옥수수와 콩을 고깃값을 올리기 위한 사료나 자동차용 바이오 연료로 쏟아붓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기아로 죽어가는 동안에도, 자본의 눈에는 이윤을 추구하는 것만이 유일한 선이자 목적일 뿐입니다.

시장은 이미 일반 사람을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자본가의 이윤을 위해 존재합니다. 시장뿐만 아니라 국가도, 미디어도, 심지어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 시장마저도 자본의 논리에 완전히 지배당해 있습니다.

"골고루 먹어라"라는 자본이 만든 달콤한 덫

이 지점에서 저는 우리 몸과 먹거리에 대한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어릴 적부터 우리는 "음식을 가리지 말고 골고루 먹어야 착한 어린이다"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습니다. 세상 반대편에서는 아이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으니, 음식을 남기거나 가리는 것은 죄악처럼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자본이 지배하는 식품 시장을 가만히 들여다보십시오.

마트에 가득 찬 공장제 가공식품, 당분과 화학첨가물로 범벅이 된 먹거리들은 과연 인간의 건강을 위해 만들어진 것일까요? 아닙니다. 자본이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이윤을 남기기 위해, 그리고 소비자의 뇌를 자극해 중독시키기 위해 기획된 상품일 뿐입니다.

세계의 절반이 굶주리는 비극의 이면에는, 나머지 절반에게 비만과 만성 질환을 유발하는 값싼 가공식품을 끊임없이 파는 자본의 이중성이 존재합니다.

따라서 오늘날 "가리지 않고 골고루 먹는다"는 것은 자본이 만들어 놓은 덫에 아무 경계심 없이 소중한 나의 몸을 내맡기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내 몸의 주권을 지키는 강력하고 효과적인 저항

이제 우리는 음식을 무조건 다 먹을 것이 아니라, ‘몸에 좋은 것만 철저히 가려 먹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내 몸에 들어오는 음식을 취사선택하는 행위는 단순히 개인의 건강을 챙기는 차원을 넘어섭니다. 자본이 무차별하게 뿌려대는 가짜 먹거리에 맞서 내 몸의 주권을 지켜내는 강력하고 효과적인 저항입니다.

거대한 자본의 시스템을 당장 바꿀 수는 없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오늘 내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을 스스로 선택하고 가려내는 일, 그것이 이 기만적인 자본의 시대에서 내 몸과 정신을 지켜내는 몸철학의 시작입니다.

👉 다음글 바로가기 ⑨ “사랑하면서 하는 고생이 행복이었다”

몸철학 드림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① 조문도석사가의(朝聞道夕死可矣)에서 도란 무엇인가?

③ 스트레스와 편도체는 왜 만병의 근원이 되었나

① 600만년 진화가 우리 몸에 새긴 비밀: 왜 채식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