⑦ 『처음 읽는 진화심리학』을 읽고
전에 ① 600만년 진화가 우리 몸에 새긴 비밀: 왜 채식인가?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인간이 600만 년 중 수렵채집으로 산 시간을 24시간으로 환산하면 23시간 58분이고, 농경은 겨우 2분에 불과하다는 이야기였다.
그 뒤로 ③ 스트레스와 편도체는 왜 만병의 근원이 되었나라는 글에서는, 맹수를 피하려고 만들어진 경보장치가 오늘날에는 직장에서의 경쟁 앞에서도 똑같이 울린다고 썼다.
두 글을 쓰면서 나는 줄곧 몸이 아직 석기시대에 맞춰져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처음 읽는 진화심리학』(앨런 S. 밀러·가나자와 사토시 지음, 웅진지식하우스)을 읽으며 알게 된 것은 뇌와 마음도 몸과 함께 진화를 배경으로 변화해 오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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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읽는 진화심리학 |
"왜 형편없는 아빠는 그렇게 많은데 그런 엄마는 없다시피 한가요?" 같은 질문을 던지고, 진화심리학의 눈으로 답을 찾아가는 문답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이번 글에서는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눈여겨본 부분, 즉 "뇌와 마음도 몸처럼 진화의 산물"이라는 이야기만 추려서 소개해보려 한다.
진화는 목에서 멈추지 않는다
이 책이 먼저 반박하는 통념이 있다. "인체에서 진화는 목에서 멈춘다"는 생각이다.
손가락이나 발가락은 자연선택을 거쳐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고 인정하면서도, 뇌와 마음만큼은 진화의 영향을 받지 않는 백지상태로 태어난다고 보는 입장이다. 저자들은 이런 통념을 '표준사회과학모델'이라 부르고, 정면으로 반박한다.
뇌도 손이나 췌장과 마찬가지로 그저 몸의 한 기관일 뿐이라는 것이다.
손이 물건을 쥐도록 진화했듯, 뇌도 생존과 번식의 문제를 풀도록 진화했다. 그 근거로 책이 소개하는 실험 하나가 인상 깊었다. 태어난 지 하루밖에 안 된 신생아 102명에게 사람 얼굴 사진과 움직이는 모빌을 동시에 보여주었더니, 남자아기는 모빌을, 여자아기는 얼굴을 더 오래 쳐다보았다고 한다. 아직 누구에게도 배운 것이 없는 하루짜리 아기에게서도 이런 차이가 나타난 것이다. 사회가 아이를 가르치기도 전에, 뇌는 이미 무언가를 지니고 태어난다는 뜻이다.
사바나 원칙 — 두뇌는 여전히 수렵기에 산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남은 개념은 '사바나 원칙'이다. 책은 이렇게 정의한다.
인간의 두뇌는 인류 초창기 환경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개체와 상황을 파악하고 대처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인류는 진화의 99.9퍼센트에 해당하는 시간을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150명 남짓한 무리를 지어 수렵채집으로 살았다. 농경이 시작된 것은 겨우 1만 년 전이고, 도시와 국가, 인터넷과 스마트폰은 그보다도 훨씬 나중의 일이다. 진화는 아주 느리게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 뇌는 여전히 그 오래된 사바나에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내가 채식 글에서 썼던 "인간의 몸은 채식을 하도록 진화했다"는 문장과, 사실은 같은 뿌리에서 나온 이야기였던 셈이다.
책은 이 원칙을 여러 사례로 보여준다. 우리가 달고 기름진 음식을 유난히 좋아하는 것은, 먹을거리가 귀했던 사바나에서는 살아남는 데 유리한 습성이었다. 하지만 슈퍼마켓에 24시간 음식이 쌓여 있는 지금, 그 습성은 오히려 비만으로 이어진다. 뇌가 아직 슈퍼마켓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저자들의 표현이 정확하다고 느꼈다.
또 하나 흥미로웠던 사례는 텔레비전이다. 책에 따르면, 특정 드라마를 즐겨 보는 사람일수록 자신에게 친구가 실제보다 더 많다고 착각하는 경향을 보인 연구가 있었다고 한다. 사바나에는 텔레비전이 없었다. 그곳에서 반복해서 마주치는 사람의 얼굴은 곧 진짜 이웃이었다. 그래서 우리 뇌는 화면 속 얼굴을 몇 번이고 다시 보면, 그를 실제 친구처럼 착각한다는 것이다. 요즘으로 치면 매일 들여다보는 SNS 속 얼굴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었다.
책이 드는 또 다른 사례는 질투심이다. 남자가 배우자의 사소한 외도 가능성에도 유난히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사바나에서는 자기 자식이 정말 자기 유전자를 물려받았는지 확인할 길이 없었기 때문에 생겨난 습성이라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친자 확인 검사도 있고, 피임법도 발달해서 그 옛날의 불확실성은 많이 줄었다. 그럼에도 뇌는 여전히 사바나 시절의 방식으로 질투를 느끼고 반응한다. 문제가 사라졌는데도 그 문제를 풀도록 만들어진 회로만 그대로 남아 작동하는 셈이다. 저자들은 이런 식으로 지금은 쓸모를 다했지만 여전히 작동하는 오래된 회로가 우리 마음 곳곳에 남아 있다고 말한다.
편도체 이야기와 다시 만나다
이 대목에서 예전에 썼던 편도체 글이 다시 떠올랐다.
맹수의 기척에 반응하도록 만들어진 경보장치가, 사자 대신 상사의 잔소리와 경쟁 앞에서도 똑같이 울린다는 이야기였다. 이 책의 언어로 옮기면, 편도체는 '진화된 심리적 기제'이고, 그것이 지금 환경에서 오작동하는 현상은 정확히 사바나 원칙이 설명하는 것이었다.
아기는 왜 아빠를 닮았다는 말을 더 자주 들을까
이 책은 짝짓기, 결혼, 범죄, 종교처럼 예민한 주제까지 넓게 다루는데, 그중 가족을 다룬 장에 나오는 이야기 하나를 소개한다.
"아기는 엄마보다 아빠를 더 닮는다"는 흔한 속설에 관한 이야기다.
여자는 자기가 낳은 아이가 자기 자식이라는 것을 의심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남자는 다르다. DNA 검사가 없던 시절, 눈앞의 아기가 정말 자기 자식인지 확인할 방법은 사실상 닮음뿐이었다. 그래서 진화심리학자들은 이런 가설을 세웠다. 아빠를 닮은 아기일수록 아빠가 확신을 갖고 정성껏 키웠을 테니, 오랜 세월에 걸쳐 아빠를 닮은 아기가 살아남는 데 조금 더 유리했으리라는 것이다.
이 가설을 뒷받침하는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다. 아기가 실제로 아빠를 닮았든 아니든, 엄마와 외가 식구들은 유독 "얘는 아빠를 쏙 빼닮았네"라는 말을 자주 한다는 것이다. 캐나다, 멕시코, 미국에서 각기 다른 시기에 이루어진 세 건의 연구가 모두 같은 결과를 보였다. 저자들은 이것을, 아내가 남편에게 "여보, 이 아이는 당신 아이예요"라고 무의식중에 안심시켜주는 몸짓이라고 풀이한다. 대부분의 사회에서 아기가 엄마 대신 아빠의 성을 물려받는 관습도, 같은 마음에서 나온 오래된 습관일지 모른다고 책은 덧붙인다.
금발머리는 왜 매력적으로 여겨질까
가족 이야기 못지않게 재미있는 대목이 3장 '성과 짝짓기'에도 있다. 앞서 나온 사바나 원칙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하는 이야기다. 왜 유독 금발머리가 매력의 상징처럼 여겨지는가 하는 질문이다.
책에 따르면 이유는 뜻밖에 단순하다. 금발은 나이가 들면서 짙은 색으로 변해가는 거의 유일한 머리색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밝은 금발은 무의식중에 "아주 어리다"는 신호로 읽힌다. 특히 옷으로 몸을 꽁꽁 감싸야 하는 추운 북유럽에서는, 남자가 여자의 나이를 가늠할 다른 단서를 얻기 어려웠던 탓에 머리색이 나이를 알려주는 정직한 신호 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지금 우리에게는 염색약이 있다는 것이다. 사바나 원칙에 따르면 남자의 뇌는 염색한 금발과 타고난 금발을 구별하도록 진화하지 않았다. 그래서 마흔 살이 염색으로 금발을 만들어도, 뇌는 여전히 오래된 신호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만다. 앞서 나온, 슈퍼마켓의 단 음식 앞에서 무너지는 뇌 이야기와 똑같은 구조다. 뇌는 자신이 만들어진 그 옛날의 세상 밖에서는 곧잘 속아 넘어간다.
책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흥미로운 추론을 하나 덧붙인다. "금발은 어딘가 야무지지 못하다"는 오래된 고정관념도, 사실은 머리색이 아니라 나이 때문일 수 있다는 것이다. 1만 년 전 북유럽에서 밝은 금발인 여자의 평균 나이는 십대 중반, 갈색머리 여자의 평균 나이는 삼십대 중반이었을 것이다. 어느 머리색이든 십대가 삼십대보다 세상 물정에 서투른 것은 당연한 일이니, 애꿎은 머리색이 나이 대신 누명을 쓴 셈이라고 책은 풀이한다.
글을 마치며
몸이 보내는 신호에 귀 기울이자고 이 블로그에서 여러 번 이야기해왔다.
이번 책을 읽고 나니, 그 신호를 보내는 뇌 자체도 하나의 오래된 몸이라는 생각이 든다. 화가 나거나, 불안하거나, 단 것이 자꾸 당길 때, 그것을 의지 부족으로만 몰아세우기 전에 한 번쯤 물어봐도 좋겠다. 지금 내 안에서 반응하고 있는 것이 21세기의 나인지, 아니면 사바나를 걷던 먼 조상인지.
배가 고프면 괜히 짜증이 나고, 낯선 소리에 몸이 먼저 굳어버리는 순간들. 예전에는 그것이 그저 내 성격이거나 의지의 문제라고만 여겼다. 이제는 그 반응 하나하나가 수백만 년을 건너온 오래된 회로라는 것을 안다. 뇌를 탓하기보다, 이 오래된 회로와 어떻게 잘 지내야 할지를 고민하는 것. 그것도 몸철학이 가야 할 다음 걸음이 아닐까 싶다.
몸철학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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