⑪ 강은 굽이쳐 흐릅니다

"상선약수(上善若水) — 가장 선한 것은 물과 같다."

노자의 이 한마디에 나는 오랫동안 마음이 머물곤 했다.
그리고 굽이쳐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다, 문득 인생의 비밀 하나를 깨달았다.

강은 목적지가 없다

우리는 흔히 강이 바다를 향해 달려간다고 생각한다. 바다라는 목적지가 있기에, 그곳에 다다르기만 하면 그동안의 고생과 희생이 정당화된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조급함이 강에게 덧씌운 착각이다. 무언가를 빨리 이루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우리의 마음을, 강에게도 그대로 투영한 것뿐이다.

증거는 강의 생김새 그 자체에 있다. 만약 강의 목적이 정말 바다에 다다르는 것이었다면, 강은 지금처럼 굽이치지 않았을 것이다. 고속도로처럼 산을 뚫고 일직선으로 내달렸을 것이다. 그러나 강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산과 들을 따라 몸을 굽혀가며, 목마른 모든 땅에 물을 나누어주기 위해 먼 길을 돌아간다.

강이 일직선으로 흘렀다면 그 물줄기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땅의 생명들은 말라 죽었을 것이다. 강이 매 순간 자신을 기다리던 생명에게 물을 나누어주며 흐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바다는 강이 흘러가다 보니 결국 닿게 되는 곳일 뿐, 강이 애초에 향해 가던 목적지가 아니다. 굽이쳐 흐르며 생명을 살리는 그 매 순간이야말로 강의 진짜 목적이다.

인생도 강과 같다

나는 인생도 강과 같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종종 어떤 성공이나 거창한 목표를 목적지로 정해두고, 그곳에 다다르지 못하면 실패한 삶인 것처럼 스스로를 다그친다. 조급한 마음으로 그 목표를 향해 질주하다 보면, 정작 나 자신도 다치고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에게도 상처를 준다.

나 역시 그랬다. 30년 가까이 다닌 회사에서, 나는 정해둔 길을 따라 성실히 걸어가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삶은 그 계획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누이의 병이 재발했다는 소식을 들은 그날, 나는 예정보다 훨씬 이르게 그 길에서 벗어나 횡성으로 돌아왔다. 계획한 목적지는 사라졌지만, 그 대신 매일 아버지와 누이를 돌보며 하루하루에 진실하게 대응하는 삶이 남았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암벽을 만난 강이 방향을 트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몸으로 부대끼며 살아온 삶에는 애초에 정해진 목적지가 필요 없었다. 그저 다가오는 하루하루에 진실하게 대응하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었다.

강이 그러하듯, 앞에 암벽이 나타나면 옆으로 돌아가고, 깊은 구멍을 만나면 그 구멍이 채워질 때까지 기다리며, 하루하루 만나는 이들과 온기를 나누며 서로를 살리는 것. 느리게 가더라도 생명을 살리며 가는 것. 그것이 내가 강에게서 배운 삶의 깨달음이었다.

노래 들어보기 "강은 굽이쳐 흐릅니다"

이 깨달음이 마음에 차올라 시를 썼고, 그 시에 멜로디를 입혀 노래를 만들었다.
내 안에서 흘러나온 이 노래가 오늘 하루도 조급함에 지친 누군가의 마음에 잠깐의 휴식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 노래 들어보기 "강은 굽이쳐 흐릅니다"

강은 굽이쳐 흐릅니다

강은 굽이쳐 흐릅니다
강이 조급한 마음에
산 위에서 바다까지 일직선으로 달려간다면
많은 사람이 다치고 죽을 수 있습니다

강은 굽이쳐 흐릅니다
아주 가끔은 폭포수 되어 비수처럼 꽂힐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경우는 순간일 뿐입니다

강은 굽이쳐 흐릅니다
더러운 물도 받아들이며 자신을 정화시켜가며
앞에 구멍이 나타나면 구멍을 다 메우며
앞에 암벽이 나타나면 암벽을 옆으로 돌아

강은 굽이쳐 흐릅니다
굽이쳐 흐르며 들판을 적십니다
조급하지 않으며 느리게 느리게 가더라도
죽어가는 생명 버려두지 않고

강은 굽이쳐 흐릅니다
굽이쳐 흐르며 생명을 살립니다
굽이쳐 흐르며 들판을 살립니다
느리게 느리게 가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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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철학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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